Blog/Book Review

책리뷰2.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1

EverJunior Minjoo 2021. 10. 6. 15:12

**이 글은 도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와이너 지음 의 본문 1부의 1편과 2편의 내용을 읽고 기록하였습니다. 총 3부의 14편으로 구성되어있으며, 하루 2챕터 독서를 시작하여 2챕터씩 요약해 게시될 예정입니다.


우리는 정보가 모인 책을 읽으며 머리에 지식을 쌓는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좀더 앎에 대한 진지한 고찰에 대한 갈증을 느끼곤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우리는 우리가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실 이부분에서 조금은 띵 하게 와닿았다.
일반적으로 시리에게 맛집알려줘 혹은 네이버 검색창에OO맛집 으로 검색하면 많은 정보들 혹은 건강정보같은 유익한 지식들은 우리가 묻는 질문들에 답을 내놓지만 머리가 너무 아픈데 출근을 안해도 되는지 아파트 단지내에서 빵빵거리며 시끄럽게 운전하는 차들을 다 고발하고 싶은 마음을 윤리적으로 참아야 하는것인지 가을마다 혹은 계절, 날씨에 따라 센치해지는 기분에 대한 답은 내놓지 못한다. 이에 저자는 철학도 답을 내놓지 못하지만, 철학은 새로운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도와주고, 바로 거기에 큰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나도 하고 있던 고민중 하나이지만 저자 또한 우리를 놔주지 않는 고민들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처럼 어떻게 를 묻는 질문이다.

사실 이런 질문 에 대서 챕터2에서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 부분은 차후에 이야기 하기로 하자.

가장 첫 챕터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침대에서 나오는 법을 이야기한다. 사실 요즘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때에 침대에서 나오기가 어렵다. 정말 저자처럼 왜? 나와야 하는가 에 대해 고민하곤 한다. 저자는 마르쿠스의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은 ‘타고난 비관주의를 억누르려고 부단히 노력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모든것이 관점의 문제라고. 맞다. 타고난 비관주의 사실 타인들이( 단순한 타인이 아닌 나의 남자친구 까지도) 나에 대해 낙관적이라 말할만큼 나는 낙관적이라 말하지만 나는 저자의 말처럼 나 또한 낙관적이라기보다 내 타고난 비관주의를 억누르려 노력한 것이라 생각한다. 혼자 있을 때마다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기에(극단적 생각을 하는것이 절대 아님을 밝힙니다.) 저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가장 두려워 한것은 죽음이 아니라 망각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온전한 삶을 살라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독촉했다. 마르쿠스는 모든 철학이 스스로의 유약함을 깨닫는 데서 시작한다는 스토아 철학의 교훈을 절대로 잊지 않았다고 한다. 스스로의 유약함을 깨닫는것은 뭔가 나 라는 견고한 성을 무너뜨린다는 생각이 들 수 도 있다. 나도 아직은 그렇다. 이제 본격적으로 침대에서 나오는 방법에 대해 말한다. 조금 흥미로운 부분이 나는 지금 무직자다. 직업전환을 위해 공부를 조금씩 해가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더 많이 갖고자 선택한 길이었다. 그런데 요즘 일찍 일어날 필요를 느끼지 못해 누워있다 아홉시쯔음 슬그머니 일어난다. 굳이 왜 침대 밖으로 나와야 하는가.
여기서 또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한다. “침대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내 무능력의 핵심에는 교활한 자기혐오가 있을 거라고 늘 의심해왔지만, 나는 그 사실을 온전히 인정하지 못했다. 나보다 용감한 마르쿠스는 그 사실을 온전히 인정하며 말한다. ‘너는 너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 이부분도 흥미로운점이 보통 나와 같은 상태에 있는 분들 시간이 여유로운분들 혹은 아주 미약한 우울감이 있는 분들은 내가 나를 싫어해서 무기력한가 나는 왜 무기력한가 를 고민할때가 있을듯 하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맥락의 생각을 해온다는것이 조금은 흥미로웠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마르쿠스에 대해 “마르쿠스는 침대 밖으로 나갈 사명이 있다. 사명은 내부에서 의무는 외부에서 온다. 사명감에서 나온 행동은 자신과 타인을 드높이기 위한 자발적 행동이다. 의무감에서 나온 행동은 부정적인 결과에서 스스로를, 오로지 스스로만을 보호하려는 행동이다.” 라고 말한다.
맞다 사실 나는 뭔가 일을 시작하거나 공부를 시작하거나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온전히 마치지 못할것 에 대한 염려로 시작하지 않고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미룰때가 빈번하다. 그러니까 의무감에서 나온 행동. 일을하든 공부를 하든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에서 나온 행동 즉 안될거야 취업이 안될수도 있어 혹은 시험에 떨어질수도 있어 하는 부정적인 결과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행동 그러니까 침대밖으로 나오기 싫은거다. 아침이 기다려지지 않고. 저자는, “새벽에 침대에서 나오기가 힘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라. ‘나는 한 인간으로서 반드시 일해야만한다.’ 스토아학파나 황제 심지어 로마인으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써.” 라는 마르쿠스의 말을 마지막으로 전한다. 맞다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아무리 오래살아도 90세 혹은 백세시대 답게 백세를 산다해도 우리는 유한한 삶을 산다. 그 속에서 기쁨을 느끼고 행복을 느껴보는 삶을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한다.

제일 마음에 와닿았던 챕터 2번째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
가장 처음에 저자는 ‘우리 문화는 일반적으로 질문을 경험하기보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화두를 던진다. 여기까진 이래서 철학은 어려워 라는 생각을 갖게하지만 좀더 보자. 소크라테스는 신탁을 통해 자기가 제일 지혜롭다는 것을 듣는데, “시인에서 장군에 이르기 까지 모든 존경받는 아테네 인을 붙잡고 말을 걸었다. 곧 소크라테스는 이 사람들이 그들 생각만큼 지혜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군은 용기가 무엇인지 몰랐고, 시인은 시를 정의하지못했다. 소크라테스는 가는곳마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지못하는’사람들과 마주쳤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깨달은것이다. 우주학자 칼 세이건은 “모든 질문은 세상을 이해하려는 외침 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모든 질문은 스스로를 이해하려는 외침이다. 소크라테스는 ‘어떻게’라는 질문에 관심이 있었다”고 전한다.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어떻게 하면 정의를 실천할 수 있을까 등등. 즉 철학은 삶, 우리 자신의 삶에 관한 것이고, 어떻게 하면 이 삶을 최대한 잘 살아내느냐에 관한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조금 와닿은 부분은 저자는 질문에 대해 ‘ 질문은 일방향이 아니다. 질문은 최소 양방향으로 움직인다. 질문은 의미를 구하고 또 전달한다. 적절한 때 친구에게 적절한 질문을 묻는 것은 연민과 사랑의 표현이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너무 자주 질문을 무기로 사용하는 것을 꼬집는다. 여기서 생각해봤다. 내가 요즘 가장 많이 대화하는 가장친한 친구와 대화할때 내 사랑의 표현을 나는 어떻게 전하는가.
소크라테스는 내가 그 뜻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전 까지는 ‘좋은 아빠’가 될 수 없을거라고 말한다. 저자는 철학이 질문을 던지는 기술이라한다면, 질문이란 모두가 아는단어, 모두가 안다고 생각하는 단어를 골라 검토하고, 뜯어보고 어러 각도에서 쿡쿡 찔러보고, 그 단어에 지독하게 밝은 빛을 비춰보라한다.
즉 내가 아빠 혹은 엄마 라는 단어를 정말 정의할 수 없고 그 뜻을 이해하기 전까지 좋은 아빠 엄마가 될수 없다고 말할것이라 한다. 이부분은 내 요약보다 본문을 꼭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아직 질문을 경험하는 중이라 마음속으로 곱씹어보는 중이기에 글로 표현할 수 가 없다. 저자가 대화한 부분중 질문을 사는 것이라 하는 부분이 있다. “ 질문을 사는겁니다. 오랜 시간 마음 한구석에 질문을 품는 거예요. 질문을 살아내는 거죠.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해결책을 찾아버려요.”
이 부분을 세번 정도 마음속에 담아보았다. 질문을 산다는것. 나는 사실 내가 품은 거의 유일한 철학적 질문 “ 어떻게 살것인가” 에 대해 자판기같은 답을 고민했다. 이건 이거야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해 하는 아주 간단 명료한 한단어로 표현가능한 자판기커피. 그러나 저자는 이번 챕터를 통해 내 생각에 대한 제시를 해주었다.
“질문을 살아내며 남은 평생을 보낸다. 철학은 말뿐이야, 질문만 끝없이 늘어놓고 대답은 없어 라고 하지만, 철학도 분명 도착지에 관심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행을 서두르지 않을 뿐이라고.
2번째 챕터 후반부에서 저자와 친구와의 대화에서 친구가 아주 좋은 질문을 한다. “성공은 어떤 모습이야?” 저자는 좋은 질문은 똑똑한 대답을 끌어내기도 하지만, 침묵을 끌어내기도 한다고 전한다. 즉 저자의 친구는 저자에게서 침묵을 끌어내었다.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했다. 여기서 저자의 두번째 답이 맘에 들었다. 저자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을지 모르지만,그건 지나치게 성찰하는 삶도 마찬가지라 한다.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 행복하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그러면 곧 행복하지 않게 될것이다”라는 말로 쾌락의 역설을 설명했다. 즉 행복은 부산물이지 절대 목표가 될 수 없다고 풀어주었다. 맞다. 사실 내가가진 가벼운 우울감의 시작은 지나친 성찰일 수도 있지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엠비티아이 성향상 논쟁을 좋아하기에 성찰과 사고를 좋아한다. 그러나 지나침은 과욕일 수 있다고 나를 다시 일깨워 주는 책이었다.